우리나라 클래식의 자부심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
소속사 크레디아
출생 1987년 7월 16일
학력 전주예술고등학교 기악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기악과 학사,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기악과 석사
제가 정말 좋아하는 뮤지션중 한명인 신지아씨,너무너무 좋아해서 글을 꼭 써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야 쓰게 됩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씨의 본명은 '신현수'입니다. 대부분 콩쿨이 해외에서 열리고, 외국인 팬분들이 발음하기를 어려워해서 대중들에게 쉽게 불려질 수 있는 이름으로 가명을 쓰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름을 아주 바꾼 건 아니지만, 작명소의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신지아씨는 전라북도 전주 출신입니다. 홀로 두 자매를 키우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언니 '신아라'씨 역시도 바이올리니스트 입니다. 신아라씨가 어릴적 유치원에서 악기를 하나씩 골라서 배우게 했었는데, 그 때 접하게 된 악기가 바이올린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바이올린과의 만남이 시작되었고, 그녀의 어머니 말씀으로는 신지아씨의 태교는 언니의 바이올린 소리로 시작 된 것 같다고 합니다. 원래 언니가 하면 동생도 다 따라하게 되듯이 신지아씨 역시 언니가 하는 것에 동경하는 마음이 있었는지, 바이올린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바이올린을 하고 싶어하는 신지아씨에게 어머니는 쿠크다스 상자를 만들어 바이올린 자세를 잡는 연습부터 잡게 하셨다고 합니다. 신아라 신지아씨 어머니는 음악을 강요하시지도 않고, 묵묵히 지켜봐주셨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두 딸들은 어려운 형편이지만 바이올린에 재능을 뚜렷히 보였나 봅니다. 그녀들이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까지는 헌신적으로 가르쳐주신 선생님들도 있지만, 그녀들은 어머니 또한 강요없이 음악을 할 수 있게 해주어서 감사하다고 뜻을 전합니다. (언니인 '신아라'씨는 한예종 석사를 졸업하고 학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며 한국에서 활동하다 프랑스 남자와 결혼후 프랑스에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신지아씨와는 다르게 크게 알려진 내용이 없어 글을 더 길게 쓸 수 없는 점 양해 바랍니다. )
그녀는 전주 예술중학교를 나와 전주 예술고를 입학하고,우리나라의 예술학교 최고중 하나인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김남윤 교수에 눈에 띄어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10년동안 가르침을 받았다고 합니다. 김남윤 교수님은 악기를 빌려주어 가면서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콩쿨에 나갈때도 악기를 선뜻 빌려주셨다고 합니다. 김남윤 교수를 사사한 그녀는 한예종을 졸업한 후 한예종 석사 (전문학사)를 마치고, 열심히 연주활동을 이어가며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행보를 이어갑니다. 신지아씨는 어렸을적부터 2012년 퀸 엘리자베스 콩쿨까지 정말 열심히 콩쿨에 나가느라 모든 시간을 썼다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해마다 콩쿨에 도전해 나갑니다. 그리고 많은 성적을 거둡니다.
2001년 대한민국 청소년 콩쿠르 1위, 대상
2001년 예후디 메뉴인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주니어부문 2위
2002년 제3회 요한슨 국제 청소년 현악 콩쿠르 1위
2004년 프레미오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3위
2005년 티보바가 국제 콩쿠르 3위
2005년 제9회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3위
2006년 하노버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2위
2007년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 5위
2008년 롱 티보 콩쿠르 1위
2009년 제1회 신한음악상 대상
2010년 대한민국 인재상
2012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바이올린 콩쿠르 3위
신지아씨가 2008년 세계 5대 바이올린 콩쿠르 중 하나인 프랑스 롱-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수상하고, 2년 전인 2006년 언니 신아라씨가 스위스 티보바가 국제 콩쿠르에서 1위없는 2위를 수상을 해 그녀들에게는 '국내파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우리나라의 악기가 아님에도 유학없이 국내에서 이런 수상을 받은 그녀들이 국내파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지아씨 역시 같은 또래의 '클라라주미강'과 비교되기도 하는데, 클라라 주미강은 독일계 한국인이기도 한데다 부모님이 유명한 성악가 출신이고, 유학파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둘의 비교와 함께 그녀의 수상경력과 연주실력은 국내파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우리나라를 대표 하는 음악가가 맞다는 걸 증명해 보입니다. 그녀의 배경이 그녀를 더 빛나게 해주는 데에 한 몫을 하는 건 분명합니다. 물론 클라라주미강의 실력도 출중합니다.
롱티보 콩쿨 후, 그녀는 바쁜 스케쥴속에서 슬럼프가 생긴탓인건지 약간의 허술함이 생겨 자신을 좀 내려놓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 나가서 3위를 하게 되어 깊은 안타까움을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퀸엘리자베스에서 3위를 했다는 것 자체도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녀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연기학원에 가서 연기를 배우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때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하지만 그녀는 슬럼프를 겪고 다시 일어서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커리어를 계속 쌓아갑니다.
첫 번째 앨범이후 2015년에 기타와 함께 '칸토안티고'라는 남미음악 앨범을 발매 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녀의 힘있는 연주를 좋아하기 때문에 좀 지루한 앨범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남미음악이 이런거구나 하고, 들으면서 편안해지는 느낌은 받긴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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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음악은 리듬과 음표가 다채롭습니다. 처음 녹음할때 셋이서 어우러져 나오는 곡의 느낌, 분위기와 사운드를 살리는 데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바이올린 사운드에 비해 기타 소리가 많이 작아서, 아주 가녀리고작은 소리를 내야할 때 어려움이 있었지만 작업을 하면서 서로 절묘하게 잘 맞아 떨어지는 작은 음색은 매우 짜릿했습니다. 두 기타리스트 선생님과 함께한 작업은 작업 내내 설렘 반 즐거움 반이었습니다.”
“저는 편안하게 음악 그대로를 느껴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음악은 무한한 상상의 자유를 줍니다.이 음악들을 듣다 보면 남미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하고 어느새 남미에 와 있는 듯이 남미의 정서에 흠뻑 빠져 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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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활동도 열심히 하는 그녀는 이어 KBS'더 콘서트'라는 클래식 프로그램 MC로서도 활동을 합니다. 그녀의 목소리를 방송으로 들었을때는 정말 좋았습니다. 신지아씨의 목소리는 듣기 편안하고, 예쁜 목소리인 것 같습니다. 더 콘서트 MC경력으로 다른 프로그램에도 나오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2016년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로 '한지민·김성령·김자인'씨와 함께 랑콤‘러브 유어 에이지’ 캠페인 모델로 발탁되기도 합니다.
신지아씨는 키가 170대입니다. 먹는걸 좋아한다는 그녀는 그만큼 운동도 열심히 한다고 합니다. 큰 키와 그녀의 변천사를 보면, 성형설로 많은 키워드들이 검색되는데요. 솔직히 말해서 그런 이야기는 많이들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랑콤 모델이 된 것도, 그녀의 이미지와 부합되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에 되었을 것이고, 보여지는 연주를 하는 콘서트 연주자로서 외모 치장을 하는 건 당연하기 때문에, 성형을 했든 안했든 그런 이야기는 연주와는 별개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거론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연주를 좋아하는 저는 신지아씨의 이름이 더욱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2015년 4월15일 올라온 그녀가 제주도에서 연주한 '내 영혼 바람되어'라는 곡은 그녀의 감정이 영상으로도 그대로 느껴집니다. 세월호 추모곡으로 올라온 곡 같은데, 후반부에 그녀의 표정에서 북받쳐 올라오는 감정과 연주를 보고 반해버려 팬이 되버렸습니다. 이 영상만 천번은 본 것 같습니다. 신지아씨의 외향적인 모습도 아름답지만, 그녀의 연주가 대중에게 더욱더 많이 알려지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파가니니 Paganini, Caprice No.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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